괴테학자의 통찰 "염치가 사라진 사회, 작은 일부터 바른 선택을 쌓는 게 중요" [배우 차유진 에세이]
괴테학자의 통찰 "염치가 사라진 사회, 작은 일부터 바른 선택을 쌓는 게 중요" [배우 차유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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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차유진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차유진 기자]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보면서 처음 품게 되었다. 평생 지역 사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묵묵히 나눔을 베푸신 김장하 선생님의 삶을 보며, 나 역시 주변에 따뜻한 영향을 주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동시에,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관련기사 : 어떻게 늙고 싶냐고? 송골매와 김장하처럼!https://omn.kr/22iwz)
그런 와중에 지난해 봄, TV 프로그램에서 세계적인 괴테학자 전영애 교수님(대출금상환계산기
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의 집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3200평의 대지 위에 '여백서원'을 세워 많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고, 정작 본인은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기거하시는 모습에 큰 울림을 받았다. 언제 한번은 뵙고 싶었다.
그 방송을 계기로 교수님의 저서들을 찾아 읽고, 관련 인터뷰나 강연 영상을 유치원저소득층지원
보며 이른바 '전영애 덕질'을 시작했다. <괴테할머니의 인생수업>,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시인의 집>을 비롯해 <토크멘터리 전영애>, <세바시>, <유튜브TV 괴테 할머니>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교수님의 삶과 생각을 깊이 들여다봤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선행은 단순히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이나 봉사의 희생을 넘어, 인간과 세상을 향한농협대출 중도상환수수료
깊은 사랑이 깃든 실천이었다.
▲ 괴테의 집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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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유진
지난 5월 중순,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교수님을 뵈러 경기도 여주로 향했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괴테마을'을 먼저 둘러볼 수 있었다. 비가 보슬보슬 내렸지만, 오히려 한적한 주변 정취와 잘 어우러져 마음이 한국민은행 금융계산기
결 차분해졌다. 조금 떨어진 '여백서원'에 들어서자, 전영애 교수님께서 환한 미소로 반겨주시며 '여백재'의 공간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열린 문틈 사이로 교수님의 한 평 남짓한 방도 보였다. 오직 집필만을 위해 마련된 작은 공간이, 마치 괴테가 긴장을 놓지 않고 쉼 없이 글을 쓰고자 마련했던 자전거 안장 의자처럼 느껴대학생 당일 대출
졌다. 책이 가득 쌓인 긴 나무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언젠가 좋은 어른이 되고픈 소망을 품고, 그 길을 찾을 지혜를 얻고자 질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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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애 교수님과 나 책이 가득 쌓인 긴 나무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교수님과 마주 앉았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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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괴테와의 '첫 만남'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괴테와의 만남은 '첫 만남'이 아니라 오히려 '종착역'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괴테 전집이 없어 혼자서 원서를 직접 읽으며 번역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주택금융공사
게 연구서와 저서가 쌓였습니다.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 번역 제안을 받았을 때도, 먼저 시 전집을 완역해 괴테를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번역을 마친 후에야 3년간 전기에 몰두해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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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백서원×괴테마을 지도
ⓒ 괴테마을
- '괴테마을'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괴테마을'은 두 가지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사람이 뜻을 품으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와 '그런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키웠을까?' 입니다. 처음엔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바이마르에서 강연하던 중, 전혀 모르는 독일인이 거액을 후원하면서 '젊은 괴테의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2024년 10월 26일에 완공된 '정원집'은 방문자가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편지를 맡기는 공간이에요. 25년 전, 저도 10년 후를 고민하며 잃어버린 저의 책과 후기들을 모아 길을 찾았고, 그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이후 9권의 책을 출간하며 꿈을 현실로 이뤘습니다. 누구나 10년 후의 지향점을 가졌을 때, 그것을 이루는 시간은 충만해진다고 믿어요."
▲ 2024년 10월 26일에 완공된 '괴테 정원집'. 방문자가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편지를 쓰는 공간. 현재는 괴테 마을 회원과 기부자를 대상으로 운영 중이지만, 점차 일반인에게 확대할 예정이다.
ⓒ 차유진
-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어떤 경험을 갖길 바라시는지요?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 줄 몰랐다'입니다. '여백서원'은 '성실히 살아온 우리에게 숨 쉴 곳이 필요하고, 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뜻으로 만든 작은 유토피아예요. '여백'이라는 이름도 본래는 '如(같을 여)'와 '白(흰 백)'이지만, 저는 '餘(남을 여)'와 '白(흰 백)'으로 불리길 바랍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괴테가 성장기를 보낸 '젊은 괴테의 집', 26살에 바이마르에 머문 '정원 집'뿐 아니라, 바이마르 재상 시절부터 노후까지 살았던 '괴테의 집'도 궁금합니다. 이 집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터는 이미 마련되어 있어요. 절차가 남아 조금 지연되고 있지만 희망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최근엔 그 부지에 코스모스를 심었답니다. 이 집을 꼭 짓고 싶은 이유는, 26살에 바이마르에 온 괴테가 6~7년을 머물면서 자기 인생의 기반을 닦은 곳이기 때문이에요. 이 집은 사람이 뜻을 가지면 얼마나 클 수 있는가를 보여줄 만한 괴테의 뜻과 삶을 담은 곳이자 괴테의 다면성을 여러가지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내부도 매우 독특하고요. 책 <시인의 집>에서 말한 것처럼, 괴테의 '색채론'에 따라 방마다 다른 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자연과학자, 극작가, 시인으로서의 괴테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2층은 전시 공간으로, 3층은 방문객들이 하룻밤 머무를 수 있는 작은 방들을 만들 계획입니다. 제 힘만으로는 어렵지만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 '젊은 괴테의 집'에 전시된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책상(비슷한 가구를 구입해 꾸몄다. 사진 왼쪽), '괴테 정원집' 내부, 10년 후의 계획을 쓰는 자리 (사진 오른쪽)
ⓒ 차유진
- 괴테의 책 뿐만 아니라 이런 공간까지... 오래 지켜본 괴테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요?
"괴테는 수많은 인물을 작품 속에 만들어냈지만, 결국 가장 잘 표현한 인물은 자기 자신이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위기를 극복해내는 힘이 있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해 정면으로 마주하며 성장했습니다. 인생은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문제의 본질을 알면 지혜가 생기고 견딜 수 있어요. 괴테가 바이마르에서 교육, 산업, 과학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른 것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관찰 덕분이었죠."
작은 일부터 바른 선택 쌓기
- '좋아하면 닮는다'고 하잖아요. 교수님께서도 괴테처럼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살아오셨습니다. 평생 괴테를 연구해 70여 권의 번역과 저술을 남기셨고, '여백서원'과 '괴테마을' 같은 공간도 마련하셨죠. 그런데 정작 교수님은 소박하게 한 평 남짓한 방에서 지내십니다. 그 모습에서 단순한 존경 이상의 배움을 얻었습니다. 어떤 원칙이나 마음가짐으로 삶을 꾸려가고 계신지요.
"저 역시 매일 넘어지고 방황하죠. 그 안에서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란 괴테의 말은 큰 위로가 됩니다. 방황한다는 건 결국 갈 곳이 있다는 의미니까요. 세상에 내 자리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모두가 힘들어서 자신을 키우기보다 남을 부러워하며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자신이 왜소해지고 불행해지죠. 반면에 큰 사람을 보면 '저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고, 긍정적인 동력을 가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괴테가 그런 사람이었고 저 역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매일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 괴테학자 전영애 교수
ⓒ 최은경
-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어느 구간에서도 바르다'라는, 교수님께서 자주 들려주시는 괴테의 명언이 생각나는데요. 저는 때때로 제가 지금 가는 길이 옳은지, 아니면 쉬운 길을 택하려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삶의 여정에서 목표가 흔들릴 때 어떻게 다시 방향을 잡으셨어요?
"저도 늘 흔들립니다. 하지만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지만, 매일 내리는 작은 결단들이 쌓여 큰 힘이 되고, 나를 단단히 세워줍니다. 산에 오를 때도 쉬운 길을 찾고 싶어 지지만, 그러나 어디로 이르든 간에 산은 꼭 넘어야 되잖아요. 중요한 건 큰 목표만 바라보기보다, 작은 일부터 바른 선택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결국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 믿습니다."
- 나이를 먹어가도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일이 정말 어렵다고 느낍니다.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사랑이 살린다'는 괴테의 말이 그래서 더 와닿았는데요.
"'사랑이 살린다'라는 말은 노년에 이른 괴테의 지혜가 응축된 표현이죠. 사랑은 결국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엔 미워도 참고 견디면 결국 아끼는 마음으로 바뀌게 돼요. 나와 다른 상대를 향한 연민과 편견 없는 시선을 키우는 게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저도 제가 한 말을 다 실행하지는 못하지만요(웃음)."
- 이번엔 교수님이 좋아하는 시에 대해 여쭤볼게요. 교수님은 시를 '삶의 부근'이라 표현하실 만큼 깊이 아끼고 사랑해오셨습니다. 책 <시인의 집>을 집필하시며 역사적인 시인의 공간을 직접 찾아다니신 여정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교수님께 시란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시를 많이 썼지만, 대학 교지에 발표한 이후 부끄러움에 20년간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39살에 독일로 갈 기회가 생겼고,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두 달간 250여 편의 시를 썼습니다. 귀국 후 시집도 냈지만, 여전히 제 시가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독일의 라이너 쿤체 시인을 찾아갔고, 선생님은 제 시를 밤새 필사해주며 "당신을 교수에서 시인 동료로 격하시키겠다"는 따뜻한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 덕에 독일에서 첫 시집을 출간했지만, 제 시에 만족하지 못해 더는 시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시를 쓰는 것도 좋지만, 시를 '삶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지금은 그렇게 시를 제 삶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듣는 내내 교수님의 시에 대한 사랑이 깊이 전해지는데요. 인생의 황혼기에도 여백서원과 괴테마을을 통해 쉼 없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시는 교수님에게 항상 '다음'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평생 '2인분'의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어머니는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컸지만, 학교 문턱도 못 가고 종갓집 며느리로 힘겹게 사셨습니다. 여러 머슴이 있어도 부엌일은 항상 어머니 혼자 맡으셨고, 늘 단정하셨죠. 연탄가스 중독으로 산소호흡기를 쓸 때야 비로소 버선 벗은 맨발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글씨가 적혔다고 전단지도 함부로 밟지 않으셨어요. (어머니 글씨가 담긴 액자를 가리키며) 열두 살 때 쓴 글씨인데, 참 정성스럽고 곱지요. 결국 많이 배운 게 무슨 소용일까요?"
▲ 어머니가 열두 살 때 쓴 글씨, 여백재 천장에 걸려 있다.
ⓒ 최은경
사람이 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장하 선생님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두루 회자되는 이유는, 아마 지금 우리 사회가 진정한 '어른'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선생님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어른의 모습'에 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제가 감히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요즘 가장 안타까운 건 '염치'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독일어로 'Ein Mann, Ein wort'라는 말을 자주 되새기는데요, 영어로 하면 'A man, a word'입니다. 사람이 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뜻이죠. 순간의 이득 때문에 말을 바꿀 수는 있어도, 끝까지 지킬 때 얻는 이득은 훨씬 큽니다.
몇 달 전, 그러니까 12월 초요. 여의도 탄핵 집회에서 휴대폰 배터리가 다 돼 옆의 여학생들에게 충전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네~!" 하며 핫팩까지 건네주더군요. 저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이렇게 밖에 세상을 못 만들어 놓은 것 같아 어른으로서 미안하다고요. 그러자 그 여학생들이 "이제 저희들이 할게요"라고 말했는데, 얼마나 부끄럽고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결국 어른이라면, 크고 작은 일에서 늘 바른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지키는 '버릇'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버릇이 서로에게 전해져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여백재 전경.
ⓒ 차유진
두 시간여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짐을 챙겨 나서는 길에 "제가 남들에 비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에 가끔 고뇌할 때가 있어요, 교수님"이라고 했더니, 교수님께서는 "세상엔 또 바보의 쓰임새가 있어요. 바보처럼 살아도 괜찮아요"라며 코를 찡긋하고 웃으셨다. '바보처럼 살아도 괜찮다'는 말은, 어쩌면 '늘 방황해도 좋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교수님을 찾아뵌 것은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안'을 얻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향한 작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결국 자신을 키우고 세상을 살리는 길이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전영애 교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진정한 삶의 태도'라면, 교수님의 말과 삶이 전해준 그 빛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언젠가 나도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길을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걸어가고 싶다.
여백재 문을 나서자 굵어졌던 빗소리가 멎고, 멀리 숲 사이로 '시정'의 기와가 인사하듯 모습을 보였다. 그 평온함 속에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이 내쉬어졌다.
덧붙이는 글 | - 2024년 1월~ 2025년 5월까지 '배우 차유진 에세이' 원고료는 안락사 없는 유기견 보호소 '별에서 온 댕댕 '(@byeollae_stardangdang)에 전액 기부되었습니다.